노숙

잡소리 2007. 3. 4. 00:43

결혼하고 가서는 노숙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고보니 결혼 전에도 노숙을 해본 일은 거의 없었구나.. 일본 와서는 교통비가 무서워서 때 되면 재깍재깍 얌전하게 들어갔던터라.

생각나는 것은, 딱 한번 새벽에 갈 곳 없어 결국 공원에서 잤던 적이 있었다.
회사의 한국인 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여직원 동료 한명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신터였다. 이 아가씨는 내가 끌고 들어온 친구인지라 남달리 신경을 쓰곤 했는데, 그날은 보기 드물게 온전하게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이었다. 허리도 간간히 아프다는 둥, 불안한 나머지 결국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말았다.
샐쭉샐쭉 웃는 얼굴의 그 아가씨를 데려다 주고 보니, 이미 전철은 끊기고, 술기운은 풀풀 나고, 때는 정초. 1월달. 가장 추웠을 때였다. 재워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경우였고, 집에 돌아갈 택시비는 커녕 몇군데 눈에 띄던 러브호텔에 들어갈 돈도 없었고(사실은 또 여린 마음에..) 엄두도 못냈고...
결국 이골목 저골목을, 육교위와 횡단보도를 참고 싸돌아다니다가,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발견한 작은 놀이터의 철제 벤치 위에서 코트를 둘둘말고, 백업용으로 가지고 나왔던 외장하드디스크를 베개삼아, 편의점에서 산 커피 캔을 부여잡고 잠을 청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04년 1월 어느 날.

결국, 보통의 상황에서 일탈을 하게 되는 경우는, 가끔 사전 관계자 중에 이성(즉 여성)이 포함되었을 경우가 있는 것이다. ^^;

Posted by t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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