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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6 발음과 문자(1)
  2. 2007.03.16 개인출판
  3. 2007.03.09 PGP (Pretty Good Privacy)
  4. 2007.03.09 성계의 단장2
  5. 2007.03.05 언어는 사고의 흔적일 뿐, 세계를 규정할 수 없어
  6. 2007.03.04 별볼일 없는 삶이란
  7. 2007.03.04 노숙
  8. 2007.03.02 오타쿠테스트
  9. 2007.03.02 이공대 문제
  10. 2007.02.19 콜라찜닭

발음과 문자(1)

한국어 2007. 3. 16. 17:18
한글

한국어를 표기하는데 쓰는 문자의 이름은 '한글'이라 불린다.
이 이름은 주시경이 맨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현재로는 한반도의 남반부 - 대한민국 - 에서 주창하는 이름으로, 북반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조선글'이라 부르고 있다.

위키페디아에서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8%80 에서 인용)
현재 한글의 명칭은 대한민국에서는 '한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글'로 부르고 있는데, 2001년 2월 중국 옌지에서 열린 "제5차 코리안 컴퓨터 처리 국제 학술 대회(ICCKL 2001)"에서는 남과 북, 해외 동포 학자들이 국제 표준화 기구(ISO)에 등록하기 위한 명칭으로 '정음(Jeongeum)'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구르(ハングル)'란 이름으로 한글은 물론 한국어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이를 알 수 있는 한 예로, NHK의 한국어 강좌의 이름은 - '안녕하십니까? ハングル講座’ 라고 불리고 있다.

이에 관해 위키페디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8%80 에서 인용)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많이 쓰지만, 중국 같은 경우 '한글'과 '조선글' 밖의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한글은 물론 한국어를 '한구루(ハングル)'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남측의 '한국어'와 북측의 '조선어' 사이에서 나온 일종의 절충안이다.

언어 및 문자의 이름 조차 정치적인 입김을 받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예가 되겠다. 생각해보면, 이후에 한글의 이름이 다른 형태로 바뀌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조선어'라는 이름에 대해서 북측에서 쓰고 있다는 이름으로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이 '조선어'라는 용어를 한반도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이름으로 써온 전통이 있어왔다고 한다. 따라서 한글로 표기를 하는 언어를 한국어 외에 조선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 앞으로는 한글로 표기를 하며 한반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가리킬때 '한국어'라고 부르도록 하자.
이후로는 한국어를 표기할때 쓰는 문자는 '한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일본어 화자를 위한) 한글의 구성

- 모음

일단 모음부터 나열해보도록 하자. 다음 문자들이 한글의 모음에 해당한다.

Korean vowels

(http://www.omniglot.com/images/writing/korean_vwl.gif)

이 순서는 사전순으로 나열한 한글의 모음이며,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한국인이 어릴적부터 한국어 생활환경에서 자라나며 반복되는 학습으로 몸으로 배우게 된다.

이 순서를 일본어 화자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암기하도록 지시했을 경우, 모음의 글자의 모양과 순서를 완벽하게 구사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까. 실제로 한국어 학습 모임에서 몇명의 일본인 화자에게 이 순서를 적어주고 외우도록 시켜본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며, 경우에는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쉽사리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순서를 체득했다 한들, 발음이 원하는 수준까지 이루어졌는가를 보면 그렇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음 문자의 수가 많음은 발음표기 면에서 잇점을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한글의 강점이니 하며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실제로 이 순서에 익숙해져있지 않은 일본어 화자(일반적인 외국인 전반에 해당되지만)에게는 모음의 글자 구성 및 순서 자체로도 큰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 화자의 경우, 일단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모음 체계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여기에 한국어 모음의 전개과정을 설명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어의 모음을 나열해보도록 하자.

ア イ ウ エ オ

이 문자들이 가리키는 발음에 근접한 한글 모음을 맞추어보면 다음과 같다.
ア: 한글의 'ㅏ'에 거의 일치한다. 단, 한글의 'ㅏ'는 입을 좀 더 크게 벌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검증된 결과는 아니므로 확인 필요)
イ: 한글의 'ㅣ'에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ㅑ와 ㅣ를 가르칠때는, 일본어의 ア와 イ를 발음하게 하고, 이와 같은 발음으로 ㅏ와ㅣ기호를 쓴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문제는 나머지 3개의 모음의 발음 경우이다.
ウ: 보통 한국인들은 'ㅜ'가 ウ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판별해보면, 일본어의 ウ를 발음할 때의 입의 형태는 한국어에서 'ㅡ'와 'ㅜ'를 발음할때의 입 모양의 대략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관동지방 일본어 방언의 화자의 경우. 관서지방의 경우 한국어의 'ㅜ'와 거의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이렇게 정리해보는 것이 좋겠다.
ウ를 발음할때 입을 조금 더 옆으로 벌린다 : ㅡ
ウ를 발음할때 입을 조금 더 앞으로 내민다 : ㅜ
エ:보통이라면 'ㅔ'로 표기하고 싶으나, 여기서도 문제거리가 있다. 일본의 많은 한국어 교재를 보면, 'ㅐ'와 'ㅔ'를 같은 'エ'로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ㅔ'와 'ㅐ'를 어떻게 발음상으로 구별해줄 수 있는가?
최근의 젊은 층의 한국어 발음에서는 'ㅔ'와 'ㅐ'는 거의 발음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는, 어렸을때 이 두개의 발음을 구별할때, 의식적으로 입을 조금 더 벌려서 가벼운 느낌으로 'ㅐ'를, 입을 조금 덜 벌려서 어두운 느낌으로 'ㅔ'를 발음하곤 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두 발음을 듣고 구별하라고 시키는 것은, 막상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본어 화자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은 두 발음을 같게 설명하고, 그래도 별도의 문자가 있으므로 구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オ:보통이라면 'ㅗ'로 표기하고 싶을 것이지만, 실제로 'ㅗ' 또는 'ㅓ'로 갈라질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ウ처럼 발음의 구별을 연습시키는 방향이 좋으리라 본다.
オ를 발음할때 입을 조금 더 옆으로 벌린다 : ㅓ
オ를 발음할때 입을 조금 더 앞으로 내민다 : ㅗ


ㅜ,ㅡㅐ,ㅔㅗ,ㅓ

(계속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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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출판

잡소리 2007. 3. 16. 15:36
죽기 전에 자신의 글들을 모아 친지들에게만 돌릴 문집을 만드는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럴듯한 무엇인가의 글을 모아서 종이묶음의 책으로 만들어 내놓는 일은 가끔 매력을 느낀다.

다만, 여기서는 어째 가격이 몇십만엔 선으로 불리는지라, 그건 아마 해당되는 시장의 방향을 내가 잘 못 잡은 듯 싶다. 틈틈이 만들어내는 번역의 결과물은 책으로 물려서 내놓고 싶은데...

어디 딱 좋은 솔루션 - 방법 - 방책 -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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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P는 인터넷 e-mail을 암호화하고 복호화하는데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다.
PGP는 또한 송신자의 신원을 확인함으로써 그 메시지가 전달 도중에 변경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암호화된 전자서명을 보내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PGP는 프리웨어나, 저가의 상용 버전으로 모두 나와있으며, 개인들과 많은 기업들에 의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비밀보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에 Philip R. Zimmermann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e-mail 보안의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었다.
PGP는 다른 사용자들이나 침입자들이 읽지 못하도록, 파일들을 암호화해 저장하려는 경우에도 역시 사용될 수 있다.

동작원리

PGP는 공개키(public key) 시스템의 변종을 사용한다.
공개키 시스템에서, 각 사용자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암호키 즉 공개키와, 오직 그 사용자에게만 알려진 개인키(private key)를 가진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내려는 메시지를 수신자의 공개키를 사용하여 암호화한다. 수신자가 그것을 받으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개인키로 암호를 해독한다.
전체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PGP는 메시지를 암호화하기 위해 더 빠른 암호화 알고리즘을 사용하며, 그 다음에 전체 메시지를 암호화하는데 사용되었던 짧은 키를 암호화하기 위해 공개키를 사용한다. 암호화된 메시지와 짧은 키는 모두 수신자에게 보내어지는데, 그 수신자는 짧은 키를 해독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개인키를 사용한 다음, 전체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짧은 키를 사용한다.

PGP는 RSA와 Diffie-Hellman 등 두 가지 공개키 버전으로 나온다. RSA 버전에서는, 전체 메시지를 암호화하는데 사용되는 짧은 키의 생성을 위해 IDEA 알고리즘을 사용하며, 짧은 키를 암호화하기 위해 RSA를 사용한다. Diffie-Hellman 버전은 전체 메시지를 암호화하기 위한 짧은 키를 위해 CAST 알고리즘을 사용하며, 짧은 키를 암호화하기 위해 Diffie-Hellman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전자서명을 보내기 위해, PGP는 사용자의 이름과 기타 서명 정보로부터 해시코드(hash code)를 생성하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이 해시코드는 송신자의 개인키로 암호화된다. 수신자는 그 해시코드를 해독하기 위해 송신자의 공개키를 사용한다. 만약, 그것이 그 메시지를 위한 전자서명으로서 보내진 해시코드와 맞으면, 수신자는 그 메시지가 서명한 송신자로부터 안전하게 도착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PGP의 RSA 버전은 해시코드를 생성하기 위해 MD5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PGP의 Diffie-Hellman 버전은 해시코드를 생성하기 위해 SHA-1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PGP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운로드하거나 구입해서 자신의 컴퓨터 시스템에 설치해야한다. 대체로, 그것은 자신의 즐겨 쓰는 e-mail 프로그램과 함께 동작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포함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PGP 프로그램이 PGP 공개키 서버와 함께 주는 공개키를 등록함으로써, 자신과 메시지를 교환하게될 사람들이 자신의 공개키를 찾을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Network Associates에서는 300,000개의 등록된 공개키를 가지고 있는 LDAP/HTTP 공개키 서버를 유지한다. 이 서버는 전세계의 다른 사이트에 미러링되어 있다.

(원글은 www.terms.co.kr 에서 가져왔으며, 이해를 위해 풀어쓰고 단어를 바꿔쓰는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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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새 책, 성계 시리즈의 최신작이 어제 날짜로 나왔습니다. 성계의 단장의 두번째 판이군요. 점심시간에 사들고 왔습니다.

〈大人気スペース・オペラ《星界シリーズ》短篇集第2弾〉ジントが見たアーヴの真実とは? エクリュア一族の特性について。ラフィールの修技館入学の祝宴の模様。ジムリュアの乱の真相等、書き下ろしをふくむ星界の秘話12篇を収録。
惑星マーティンの支配をめぐる裏交渉が明かされる「併呑」を始め、ラフィールと出会う前のジントが目撃したアーヴの真実に迫る「嫉妬」、ジントと
サムソンが出会う「着任」、突撃艦搭乗直前のエクリュアの心情が語られる「童友」、ラフィールの修技館入学を祝う宴の模様を描く「祝福」、領地に向かうジ
ントが新居を買う「転居」など、本篇では語られざるアーヴの歴史に隠された真実を暴いた、書き下ろし「墨守」を含む全12篇。

이번 단장2에 실린 12개의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일단 원제목과, 이후 내놓을 번역본에서 쓸, 적당히 풀어써본 제목과 출전, 간단한 소개 순입니다.

병탄(併呑) : 하이드 성계의 합병의 실상

2005 10월 발매된 성계의 문장 드라마 CD-BOX의 부록
혹성 마틴에 침범한 아브제국군과 마틴 성계 정부와의 뒷교섭의 내막 이야기입니다.

질투(嫉妬): 질투 – 아브의 진실이란

2001 5월 발매된 성계의 문장 필름북1에 실림
델크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진트와 같은 민치우단에 속한 친구들 사이의 에피소드입니다. 어린아이들 입장이긴 하나, 아브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맛볼 수 있네요.

착임(着任) : 착임 샘슨의 열익상사 착임 이야기
2005 12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 드라마 CD-BOX의 부록
종사에서 상사로 진급한 샘슨의 훈련중 에피소드입니다.

동우(童友) : 옛친구 – 노르와 사그제일의 재회
2006년 2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2 드라마 CD-BOX의 부록
열익상사 에크류아가 우연찮게 코류아 일족의 사그제일과 다시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입니다.

전거(転居) : 이사 – 진트의 새 성관 구입 이야기

2006 4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3 드라마 CD-BOX의 부록
흐름으로는 전기2 이후에 진트가 하이드성계로 떠나기 직전, 새 하이드 백작성관이 될 배를 구입하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모계(謀計) : 모계 – 트라이프의 수기생 시절

2001 7월 발매된 성계의 문장 필름북3에 실림
트라이프와 앙숙 카쉬난쉬의 상사수기생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가 실려있습니다.

구기(球技) : 아토스류아의 벨포코우스 이야기

2001 9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 필름북2에 실림.
아브의 전통 경기인 벨포코우스의 선수로 참가한 페브다쉬 남작공녀 로이와, 그의 유전자제공자 코세이르와의 짧은 이야기입니다.

결별(訣別) : 결별 - 어느 제국국민의 탈출기

2001년 6월 발매된 성계의 문장 필름북2에 실림.
보육요람을 둘러싸고 한나 데리즈와 그의 남편을 포함한 혹성 주민들 간에 벌어지는 충돌이, 결국은 어떤 결단을 낳게 됩니다.

동희(童戯) : 유령놀이

2001 8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 필름북1에 실림.
어린시절 에크류아와 코류아의 아이들의 탐험놀이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노르의 성격은 어릴때부터 남달랐군요.

축복(祝福) : 축복 – 라피르의 수기관 입학 축하연

2001 10월 발매된 성계의 전기 필름북3에 실림.
수기관 입학 자격을 딴 라피르를 위한 축하연 이야기입니다.

변전(変転) : 격변 – 실록 지므류아의 난

S-F매거진 2006년 4월호에 실림.
제국 사상 최대의 반란, 지므류아의 난의 일대기입니다.

묵수(黙守) : 역사가 카류 일족의 싸움

신작 단편
아브제국이 아직 성립되기 전, 기록을 담당했던 카류 일족이, 어느 일을 계기로 큰 사건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아브 창세기의 귀중한 기록들이 유실되었던 내막에 관한 숨겨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번역은 되었고, 몇개만 추가로 건드리면 완성이 가능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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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고의 흔적일 뿐, 세계를 규정할 수 없어
[말들의 풍경] <49>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사피어·워프 가설에
대하여



흔히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말을 한다.
서로 다른 빛깔의 띠 일곱 개가 무지개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영어(Seven colors of the rainbow)나 프랑스어(Sept couleurs de l'arc-en-ciel)를 비롯해 다른 자연언어들에도 이와 똑같은 표현이 있다.

(사실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한국어 표현은 그 같은 유럽어 표현들을 일본어에 기대어 차용한 것일 테다.) 그러나 무지개는 빛깔의 연속체이므로, 육안으로 또렷이 구분되는 띠가 거기 있을 리 없다. 빛깔들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무지개에서, 그저, 제 모국어가 지닌 기본 색채 어휘 수만큼의 띠를 들춰낼 뿐이다.

그러니,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일곱 빛깔을 ‘공식적으로’ 띠게 된 것은 유럽어(와 유럽어 표현을 번역차용한 한국어)를 포함한 많은 자연언어가 무지개의 색상에 얼추 대응하는 색채 어휘를 우연히도 일곱 개씩 지녔기 때문이랄 수 있다. (17세기 말 유럽인들이 무지개 빛깔을 일곱으로 확정한 데는 기독교 신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이 문제는 접어두자.)

독일 출신의 미국인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1884~1939)와 그의 제자 벤저민 리 워프(1897~1941)는 여기서 어떤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무지개의 띠가 몇 개냐고 물었다. 대답은 제각기 달랐다. 사피어와 워프는 이 설문 결과에 기대어,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에 얽매인 채 세계를 경험한다고 판단했다.

언어가 인식·사고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은 부분적으로만 옳은 주장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어 이전의 ‘멘털리즈’가 있어 한국어·일어·영어 모두에 사고의 가능성 무한

이 판단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모국어가 그어놓은 선에 따라 자연세계를 분단한다”는 워프의 유명한 발언이 나왔다. 언어가 의식을, 사고와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이 견해는 사피어-워프 가설 또는 언어결정론이라 불리며 그 뒤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논란거리가 돼 왔다.

워프는 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누이트(에스키모)의 어떤 언어공동체에는 ‘눈’(영어의 snow)에 해당하는 말이 400개나 된 사실을 내세웠다. 이 400개 운운은 워프의 조작(이 아니라면 심한 과장)이었음이 뒷날 드러났다. 이누이트의 언어에 눈을 가리키는 말이 영어보다 많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서양인은 독일 출신의 미국인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1858~1942)인데, 그가 제시한 단어는 네 개에 불과했다.

보아스는 이누이트의 일부 언어가 ‘내리고 있는 눈’과 ‘땅에 쌓인 눈’과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눈’과 ‘바람에 흩날려 한 곳에 쌓인 눈’을 각각 다른 단어로 부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400개든 네 개든, 워프에게는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눈을 가리키는 단어를 네 개나 지닌 이누이트는 거기 해당하는 단어를 하나밖에 지니지 못한 영어화자보다 눈을 네 배나 넓고 섬세하게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눈’에 해당하는 이누이트어 단어들을 제시하며 보아스가 내놓은 주장은 문화나 삶의 방식이 언어에 반영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언어는 현실의 거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상식적인 판단이다. 사피어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언어가 현실의 거울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언어와 현실이 서로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이것도 경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견해다.

흔히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완곡어 운동(예컨대 ‘검둥이’나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치하는)은 언어가 현실을 부분적으로는 규정할 수(개선하거나 악화할 수)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워프는 스승보다도 더 나아갔다. 그는 언어와 세계의 상호작용에서 언어 쪽의 힘을 더 크게 평가하며, 세계가 언어를 결정한다기보다 언어가 세계(인식)를 결정한다고 과감히 주장했다. 이때, 인간의 인식이나 사고나 문화 따위는 언어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이것도 받아들일 만한 견해일까?

이런 언어결정론은 20세기 전반기의 ‘흘러간 이론’이 아니다. 2004년, 피터 고든이라는 미국인 심리학자는 브라질에서 피라하족(族)이라는 수렵채취 종족을 관찰했다. 고든은 그 과정에서 피라하족의 언어에는 수사가 ‘하나’, ‘둘’, ‘많다’의 셋밖에 없을 뿐 아니라 이 종족의 많은 사람들이 셋 이상의 수를 셈하는 걸 매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관찰에 기대어, 피라하족의 언어가 피라하족의 세계인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프가 언어결정론을 주장했을 때, 그 언어는 특정한 어휘라기보다는 문법 범주들을 가리켰다. 그의 이런 착상은 그 뒤 수많은 작가들(주로 과학소설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그들로 하여금 갖가지 ‘별난’ 언어들을 가공의 공간 속에 배치하게 만들었다. 혁명이나 반항을 연상시킬 수 있는 어휘 자체를 없애버린 <1984년>(조지 오웰)의 ‘뉴스피크’(신어)를 위시해, 1인칭 단수 대명사(‘나’)가 없는 언어, 구체명사가 없는 언어, 소유대명사나 소유형용사가 없는 언어 따위가 이런저런 소설 속에서 설정됐다. 그리고 그 가공의 공간 속에서, 그 언어들은 그 언어 화자들을 순응주의자로, 집단주의자로, 관념주의자로,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이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에게 언어는, 워프가 생각했듯, 사고와
행동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주류는 이런 언어결정론을 부정한다. 사람의 생각은 그가 쓰는 자연언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까지 판단하는 이론가도 있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그 예다. 핑커에 따르면, 사람은 영어나 중국어나 아파치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 그 ‘사고의 언어’는 모든 자연언어들에 선행하는 메타언어다. 핑커는 자연언어들로부터 독립적인 이 추상언어를 ‘멘털리즈'(mentalese)라 불렀다.

핑커의 이런 견해는 모든 자연언어가 심층구조에서는 동일한 문법을 지녔다는 촘스키 이후 언어학자들의 생각과 통한다. 이런 보편문법이나 ’멘털리즈‘를 상정하는 한, 지각의 근본적 범주와 인식작용은 인류에게 종(種)보편적이고, 따라서 자연언어들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표면구조로부터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촘스키나 핑커 같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아니더라도, 언어결정론은 경험적으로도 미심쩍다. 사람의 사고와 인식이 모국어와 어느 정도 상호작용을 하는 듯 보이긴 하지만, 더 큰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고와 인식 쪽이지 언어 쪽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국어는 그 고유어에 빛깔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어휘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빨갛다’ 계통의 형용사만 해도 한국어 사전에 올라있는 것이 예순 개 가까이 된다.

(일부만 예를 들자면 빨그스레하다, 빨그스름하다, 뻘겋다, 뻘그스레하다, 뻘그스름하다, 뻘그죽죽하다, 발갛다, 발그레하다, 발그무레하다, 발그스레하다, 발그스름하다, 벌겋다, 벌그레하다, 벌그스레하다, 벌그스름하다, 벌그죽죽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붉다, 불그데데하다, 불그레하다, 불그름하다, 불그무레하다, 불그스레하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 불긋하다, 불긋불긋하다, 검붉다 등.) 그런데 자음이나 모음을 교체하고 이런저런 접사를 붙여가며 한국어가 제 어휘장 안에 마련한 이 섬세한 색채어휘 덕분에 한국인들의 색채 감각은 다른 자연언어 사용자보다 훨씬 더 섬세해졌는가?

조형예술사 책에서 한국인들의 이름을 찾기 어려운 걸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육안으로 변별할 수 있는 무지개 빛깔의 수는 제 모국어가 구별하는 무지개 빛깔의 수보다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영어나 한국어에 눈을 가리키는 말이 네 개가 아니라 하나뿐이라 해서 영어화자나 한국어화자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땅에) 쌓인 눈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누이트 이외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그 눈들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들이 쓰는 언어 때문이 아니다. 셋 이상의 수를 헤아리는 데 서툴다는 브라질의 피라하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수 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언어에 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렵 채취 활동에 수 계산이 그리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의 to be에 해당하는 동사가 스페인어에는 둘이 있다. ser와 estar가 그것이다. ser는 불변적 본질적 속성과 관련이 있고, estar는 가변적 상태나 존재를 나타낸다. 예컨대 영어의 good에 해당하는 형용사 bueno를 ser 동사와 함께 쓰면 ‘선량하다’는 뜻이 되고 estar 동사와 함께 쓰면 ‘건강하다’는 뜻이 된다.

또 영어의 pretty에 해당하는 여성형 형용사 guapa를 ser 뒤에 붙이면 원래부터 예쁘다는 뜻이지만 estar 뒤에 붙이면 일시적으로 예뻐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스페인어화자가 영어화자보다 존재와 상태에 대한 인식이 더 섬세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원칙적으로, 스페인어는 영어로 충분히 번역될 수 있고, 영어도 스페인어로 충분히 번역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어화자들이라 해서 “He loves a girl”과 “He loves the girl”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고나 인식보다, 더 나아가 세계보다 언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언뜻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언어라는 것에 어떤 위광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사피어-워프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20세기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지적 논쟁의 흥미로운 주제였다. 언어결정론은, 유구한 반-이성주의 전통 속에서, 고대 인도의 언어학자들로부터 근대 독일의 낭만주의 문필가들에 이르는 강력한 지지자들을 얻었다.

이런 전통과는 이질적인 기반 위에 선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내 언어의 한계들은 내 세계의 한계들을 뜻한다”는 멋진 정식으로 다른 방향에서 언어결정론을 거들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결정론은 자연언어들의 세계 분절 방식 차이에 바탕을 둔 워프의 언어결정론과 층위를 달리 하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런 견해를 속화하며 기계적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기이한 언어신비주의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일본어에는 특별한 주술적 힘이 있어서 그것이 일본에 복을 가져다 준다고 여기는 이른바 고토다마(言靈) 신앙은 이런 언어신비주의의 극단적 예다. 또 자연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이댄다면, 실어증 환자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를 것이다.

분명히, 언어는 사고나 세계관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언어가 사고나 세계관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언어의 도움을 받아 세계를 인식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언어의 도움 없이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적어도 일반적 수준에서는, 언어가 사고의 흔적이고 세계관의 흔적인 것이지, 그 거꾸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사고나 세계관이 언어의 흔적인 것은 아니다. 영어화자에게도, 한국어화자에게도, 스와힐리어화자에게도, 사고와 인식의 가능성은 똑같이, 무한히 열려있다. 그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한, 그에겐 보편문법으로 운용되는 ‘멘털리즈’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언어가 생각의 흔적이지 생각이 언어의 흔적은 아니다. 영어화자에게도, 한국어화자에게도, 스와힐리어화자에게도, 사고와 인식의 가능성은 똑같이, 무한히 열려있다.

(한국일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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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잡소리 2007. 3. 4. 00:43

결혼하고 가서는 노숙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고보니 결혼 전에도 노숙을 해본 일은 거의 없었구나.. 일본 와서는 교통비가 무서워서 때 되면 재깍재깍 얌전하게 들어갔던터라.

생각나는 것은, 딱 한번 새벽에 갈 곳 없어 결국 공원에서 잤던 적이 있었다.
회사의 한국인 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여직원 동료 한명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신터였다. 이 아가씨는 내가 끌고 들어온 친구인지라 남달리 신경을 쓰곤 했는데, 그날은 보기 드물게 온전하게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이었다. 허리도 간간히 아프다는 둥, 불안한 나머지 결국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말았다.
샐쭉샐쭉 웃는 얼굴의 그 아가씨를 데려다 주고 보니, 이미 전철은 끊기고, 술기운은 풀풀 나고, 때는 정초. 1월달. 가장 추웠을 때였다. 재워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경우였고, 집에 돌아갈 택시비는 커녕 몇군데 눈에 띄던 러브호텔에 들어갈 돈도 없었고(사실은 또 여린 마음에..) 엄두도 못냈고...
결국 이골목 저골목을, 육교위와 횡단보도를 참고 싸돌아다니다가,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발견한 작은 놀이터의 철제 벤치 위에서 코트를 둘둘말고, 백업용으로 가지고 나왔던 외장하드디스크를 베개삼아, 편의점에서 산 커피 캔을 부여잡고 잠을 청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04년 1월 어느 날.

결국, 보통의 상황에서 일탈을 하게 되는 경우는, 가끔 사전 관계자 중에 이성(즉 여성)이 포함되었을 경우가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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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테스트

잡소리 2007. 3. 2. 10:57
오타쿠테스트 사이트에 가봤다.

http://www.freeani.info/moetest3.php

아래는 테스트를 받은 후에 받은 인증서. 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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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대 문제

잡소리 2007. 3. 2. 10:51
포스텍을 수석입학/졸업한 어떤 전도유망한 아가씨가 의대본과에 
편입을 한 일로 시끌법적한 모양이다.

본인의 꿈을 찾아 진로를 바꾸든 어쩌든 알 바는 아니고, 오히려 잘 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작위적인 것은 너무나 좋아하는 기자놈들의 이빨까기의 희생양이
된 셈이라 불쌍하기 그지 없다.

그건 그렇고, 때마침 알게된 시민쾌걸의 한 작품.

http://cartoon.stoo.com/simin/html/simin319.html

정말이지, 시민쾌걸은 시대의 역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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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kids)

콜럼버스의 대발견이란 프로그램에서 콜라닭찜을 보여준걸 봤어요.

콜라4:간장1이 양념 배율이며 기타 아무 양념을 넣지 않아요.
그냥 닭찜(닭도리탕)하듯 위의 양념을 양념장으로 삼아서 토막친 닭을 냄비에
다마 조려내면.. 맛이 맵지 않은 안동찜닭 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신기하죠?
아무 양념안하고 콜라랑 간장만으로  찜닭을 만들수 있다니...^^
출연자들도 첨엔 저게 무슨 맛이 날까? 하는 의심의 표정이었지만 먹어보곤
다들 오~~ 하는 감탄을 하던게 기억나네요..

콜럼버스의 대발견 상반기 결산에서 10등 안에 든 발견 이었으니 한번들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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